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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가볍게 읽기 좋은 소설, 프랑스 소설 책

너무나도 더운 날씨 때문에, 여름은 집에서 에어컨 틀어놓고 책 읽기 딱 좋은 계절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또 심오하고 함축적인 단어들로 가득한 글은 집중하기가 어려운데요. 그럴 때 저는 블랙유머 장르의 단편 소설을 찾아보곤 합니다. 과자를 먹으면서 보는 이러한 소설은 마치 영화 보는 듯 즐겁습니다. 기발한 상상력과, 그 안에서 폐부를 찌르는 풍자를 발견하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저는 프랑스의 영화 중 상상력이 기발한 작품들을 좋아하는데요. 특히 미셸 공드리 감독의 영화들을 아주 좋아합니다. 그의 영화 [이터널 선샤인]에서는 사람 머릿속의 특정 인물과 관련된 기억을 읽어 삭제해주는 서비스가 존재하며, 이를 표현하는 그의 표현 방식 또한 기발하고 아름답기까지 해요. 또, 영화 [델리카트슨 사람들], [아멜리에]를 만든 장 피에르 주네 감독의 영화도 동화 같으면서도 발칙한 상상력이 돋보이는 작품들이 많습니다.

 

프랑스 영화 추천은 나중에 해보도록 하고, 오늘은 프랑스 감독들만큼이나 독특하고 기발한 상상력을 가진 프랑스 소설가들의 작품을 소개해보려고 합니다.

 


1. 암퇘지(Truismes) / 마리 다리외세크

프랑스 소설가 마리 다리외세크의 [암퇘지(Truismes)]는 그녀의 데뷔작입니다. 향수 가게(겉으로는 향수 가게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남자 손님의 성적 욕구를 돈 받고 채워주기도 하는 곳)에서 일을 하는 주인공 여성의 몸이 점점 돼지로 변해가는데요. 그 과정에서 그녀는, 어떨 땐 사람이었다가, 또 어떤 상황에서는 기꺼이 돼지로서의 삶에 충실하기도 합니다. 또 그녀가 만나는 남자 중에는 사람보다는 돼지(혹은 짐승)에 가까운 존재도 있습니다.

 

사회 현실은 이성적인 사유를 할 수 있고, 그에 따라 행동하는 인간들로 구성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돼지우리와 별반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을 작가는 보여줍니다. 작가가 실제로 그녀 자신의 몸이 돼지가 되는 과정을 겪어본 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디테일한 묘사는 놀랍고 흥미롭습니다. 결말로 갈수록 조금씩 처지긴 하지만, 분량 자체가 그렇게 많지 않아 가볍게 읽기 좋습니다.

 

책 암퇘지 커버 사진
책 < 암퇘지>, 마리 다리외세크

 

 


 

 

2. 저물녘 맹수들의 싸움(Combat De Fauves Au Crepuscule) / 앙리 프레데릭 블랑

앙리 프레데릭 블랑의 [저물녘 맹수들의 싸움]은 집을 보러 한 건물에 들어갔다가 엘리베이터에 갇히게 된 광고업자 샤를의 대략 20일간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소비자, 특히 여자의 마음을 꿰뚫는 데에 굉장한 자신감을 가지고 있으며, 이를 자랑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샤를의 능력은, 이 건물의 엘리베이터에 갇히자마자 쓸모없는 하찮은 것이 됩니다.

 

엘리베이터에 갇힌 주제에, 여유 있고 점잖은 (그런 척하는) 그의 태도는 집주인 여자로 하여금, 오히려 그녀가 조금의 도움도 주지 않고 외면하도록 만듭니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데에 도가 텄다고 자부하던 광고업자 샤를은, 결국 크리스마스이브까지 19일을 내내 엘리베이터에 갇혀있게 됩니다. 샤를은 그 어떤 사람의 마음도, 그를 돕도록 움직이지 못한 것이죠.

 

책 저물녘 맹수들의 싸움 사진

 

이 책은 굉장히 사회 풍자적인 내용을 많이 담고 있습니다. '풍자구나'하는 것을 발견하는 것이 어렵지 않아, 누구나 공감하면서 읽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지금 기억에 남는 부분을 꼽자면, '속도가 사람을 노예로 만든다'는 구절이 있습니다. 삶의 모든 소중한 일들, 예를 들면, 사랑, 우정, 독서, 호기심, 맛있는 요리 등등은 모두 '시간'을 필요로 한다는 것입니다. 서두를수록 초조해지고 영혼은 위축되어 제대로 해낼 수 없다는 것이지요. 1년 전에 읽었던 책이지만, 현재의 제 상태에서도 공감이 가는 내용이네요.

 


 

3. 오페라 택시 / 레몽 장

이 책은 대략 10년 전, 제가 대학교를 다닐 때 도서관의 프랑스 소설 코너를 훑어보다 발견해서 읽었었습니다. 읽어보고 너무 재밌고 좋아서 구매한 이후로, 2번은 더 읽었던 것 같아요. 아주 짧은 8개의 이야기가 담긴 단편집입니다.

 

8편의 이야기가 모두, 현실과 환상의 경계에 있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일반적인 논리와 상식적인 관습에서는 매우 벗어난 이야기들인데요. 이 책의 이야기들은 '상상력'이라고 치부하고 그저 재미로만 보기에는 무언가 찝찝합니다. 다 읽고 나면, 내가 그동안 '나'와 내가 사는 이 세상을 제대로 보고 있던 게 맞나? 하는 의심이 들게 됩니다.

 

이 책의 단편들은 모두, 안개가 뿌옇게 낀 것 같은 화면의 영화 속 장면들이 떠오르는 이야기들이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게 됩니다. 상상력을 풀가동할 수 있는 책이기 때문에, 늘 답이 이미 정해져 있고, 틀에 박힌 일만 하느라 답답했던 분들에게, 휴식 같은 책이 될 것 같습니다:)

책 오페라 택시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