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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재밌게 읽은 단편집 몇 권 (영화보듯 가볍게 읽기 좋은 책 추천)

재밌게 읽은 단편집 몇 권을 소개해볼까 하고 생각만 하고 못하다가, 이제야 책 추천 포스팅을 올리려고 합니다. 예전에는 장편의 두꺼운 소설도 참 좋아했었는데, 언제부턴가 호흡이 긴 책은 집중이 잘 안 되더라고요. 그래서 요즘에는 서점에 가도 단편집이나 잡지들을 위주로 읽는 것 같아요.

 

특히 작년부터는 젊은 작가들에 관심을 가지고 책을 찾아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동안에는 관심도 없었던 SF 장르에도 푹 빠지게 됐고요. SF라고 하면, 그동안은 어려운 과학이나 우주 이야기를 다루는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생활 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접목시켜 흥미롭게 풀어낸 이야기들이 많습니다. 

 

바쁘다는 핑계로 책에 소홀하다가, 퇴사를 한 후 다시 책을 찾게 되었고, 최근에 코엑스에서 열린 국제도서전을 다녀와서는 책 읽는 속도에 가속도가 붙었어요. 세상에는 아직도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너무 많고, 계속 만들어지고 있네요. 저는 책으로부터 뭔가를 배우고 지식을 습득하기보다는, 영화를 보듯이 봅니다. 저는 대부분은 단순 재미를 위해서 많이 읽고, 이를 통해 스트레스가 풀리거나 위로를 받을 때도 있어요. 그래서 주로 소설을 읽는 편입니다. 

 


1. 칵테일, 러브, 좀비 - 조예은

안전가옥이라는 출판사를 알게 된 건 이 책을 접하고 난 후부터였습니다. 안전가옥에서 기획한 책들이 전부 저의 취향이고, 좋아하는 출판사가 생긴 것도 처음이에요. 안전가옥의 책들은 전부 재미있지만, 특히 조예은 작가님의 <칵테일, 러브, 좀비>는 정말 흥미로웠습니다. 이 책은 총 4편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초대>, <습지의 사랑>, <칵테일, 러브, 좀비>, <오버랩 나이프, 나이프> 이렇게요.

 

그중 가장 좋아하는 건 <오버랩 나이프, 나이프>로, 타임리프를 곁들인 가족의 이야기입니다. 가부장적이고 폭력적인 아버지를 견디는 딸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데, 타임 리프라는 비현실적인 장치가 메인이지만, 인물들이 처한 상황이나 느끼는 감정들이 매우 현실적으로 그려집니다. 판타지적인 요소로 재미도 있으면서, 동시에 현실의 사회적 이슈들을 담고 있어서 가볍지만은 않습니다.

 

맨 처음에 나오는 <초대>는 공감되는 부분이 많았는데, 가족의 강요로 먹기 싫은 회를 삼켰다가 17년째 목에 걸린 가시로 고통받는 여자의 이야기입니다. 그녀는 남에게 휘둘리거나, 본인의 의견이 처참히 뭉개질 때,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을 편하게 하지 못할 때마다 주인공의 목에 걸려있는 가시로 인한 통증은 더욱 날카로워집니다. 저도 비교적 소심하기도 하고, (제 생각에) 도덕적 기준이 높은 편이라, 옳지 못한 행동을 한 사람들을 보거나 그들에게 당당히 지적하지 못할 때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편입니다. 인간관계에서 받는 상처를 가시로 표현한 것이 상징적이었고, 공감이 많이 되더라고요.

 

 

책 &lt;칵테일&#44; 러브&#44; 좀비&gt;

이 책을 다 읽고 처음 들어본 조예은이라는 작가님의 상상력에 감탄하며, 조예은 작가의 모든 책들을 한꺼번에 구입해 버렸습니다..^^ 조예은 작가님 책 중 추천 작품은 <뉴서울파크 젤리장수 대학살>, 그리고 각기 다른 작가의 5개의 작품이 실린 단편집 <펄프픽션>에 실린 조예은 작가님의 <햄버거를 먹지 마세요>를 강력 추천합니다.

 

 

 

 

2. 꼼짝도 못 하고 서 있기 - 데이비드 세다리스 

앞에서도 이야기했듯, 저는 소설을 좋아합니다. 특히 현실에서 있을법한 이야기보다는 상상의 나래를 펼친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좋아해요. 저에게 책은 잠시나마 현실의 고민들을 잊게 해주는 수단이에요. 마치 마블의 영화들처럼요. 그래서 에세이는 별로 선호하지는 않는데, 데이비드 세다리스의 에세이들은 좋아합니다. '현실도 이렇게 재미있을 수 있구나' 하며, 특별한 에피소드로 가득 찬 그의 삶이 부럽기도 하고, 나의 인생에서도 소소하지만 글로 적어 보관할만한 가치가 있는 흥미롭고 기억에 남는 일을 만들려고 노력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보다 보면 혼자 키득거리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데이비드 세다리스의 책

 

 

 

3. 맥아더 보살님의 특별한 하루

부제 '아스트랄 개그 크로스오버 단편집'에서 알 수 있듯이, 짤막한 유머 소설들이 담긴 한국소설단편집입니다. 아스트랄, 'astral'이라는 단어가 붙은 만큼, 현실과는 매우 동떨어진, 이성적인 사고로는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들을 담고 있습니다. 

 

총 11개의 단편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중 하나를 꼽자면 <죽음에 이르는 병, 발기부전. 그대로 놔두시겠습니까?>입니다. 제목만으로 예상해본 내용과는 전혀 달랐고, 매우 매우 새롭고 기발했고,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은 가지고 있는 문제점을 다루고 있어서 공감도 되더라고요. 푹 빠져서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뛰는 대상이 없이, 무미건조하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을 발기부전이라는 병에 걸렸다고 표현하고 있는데요. 그 병을 고칠 수 있는 방법은 돈을 들여야 하는 거창한 것이 아니라, 누가 보면 별거 아니어 보일 수도 있는 작은 행복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해주는 책입니다.

 

책

 


위에서 소개한 3권의 책 외에도, 공포 장르를 좋아하신다면 <단편들, 한국 공포 문학의 밤 1,2>도 추천합니다. 이제 여름이 다가오는 만큼, 서늘해지는 공포 소설도 한 번 읽어보세요. 동영상 공유 범죄나 학교에서의 따돌림 문제, 독박 육아 등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사회가 가지고 있는 문제들을 다루고 있기도 해서, 한 많은 귀신이 옷장이나 우물에서 튀어나오는 공포영화와는 또 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