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네 명의 배우가 나란히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 포스터를 고등학생 때 처음 보고는, 어떤 내용인지도 모르면서, 좀 더 커서 이 영화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을 때 봐야겠다고 생각했었다.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을 만한 것을 몇 번 겪고 나서 이 영화를 봤을 때, 이제야 보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영화의 제목 [클로저(Closer)]는 사전적으로 '가까운'의 뜻과 함께, '닫다' 혹은 '비밀스러운'의 뜻도 가지고 있다. close라는 한 단어가 가진 여러 가지 의미가 이 영화 안에 모두 담겨있다. 영화의 주인공은 네 명의 남녀이다. 스트립 댄서인 앨리스(나탈리 포트만)는 우연한 사고로 댄(주드 로)과 사랑에 빠진다. 서로에게 낯선 존재(stranger)였던 둘은 점차 가까워지고, 누구보다 친밀한 사이가 된다. 하지만 사랑은, 상대가 온전히 내 것이 되었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많은 문제를 일으키기 마련이다. 서로가 편안하다고 생각될 때 권태로워지며, 안전하다고 느끼기 시작하면 불안해진다.
댄에게는 앨리스가 있었으면서도, 댄은 낯선 여자 안나에게 끌린다. 그리고 그는 그 마음을 숨기지 않고 안나에게 드러낸다. 안나 역시나 댄에게 호감이 있었지만, 댄에게는 연인 앨리스가 있었기에 안나는 그를 거절한다. 그리고 그녀는 우연히 만난 낯선 남자 래리와 결혼을 하게 된다. 하지만 댄을 향한 안나의 마음은 쉽게 끊어지지 않았고, 댄의 끊임없는 구애에 안나는 못 이기는 척 댄과의 관계를 지속한다. 하지만 영원한 비밀은 없는 법. 댄의 연인인 앨리스와 안나의 남편인 래리는 각각 자신들의 연인이 바람을 피우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사람들은 누군가와 가까워질수록, 상대방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길 원한다. 상대방에게 더 많은 진실을 요구하고, 상대방의 삶에 깊이 관여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깊은 관계일수록 사람들은 숨기고 싶은 것들도 많다. 사람들은 오히려 낯선 사람에게는 그들의 본모습 중에서 어두운 면, 지저분한 면을 스스럼없이 노출시킬 수 있지만, 가까운 사람들에게는 보여주기가 꺼려진다. 아마 사람들은, 가까운 누군가가 그들의 그런 모습을 보고 비난하고 거부할까 봐, 자신에게서 멀어질까 봐 두려워서 일 것이다.
영화 [클로저]는 낯선 사람과 가까워지고 사랑에 빠졌다가, 다시 낯선 사람이 되는 과정을, 얽히고설킨 네 사람의 관계를 통해 보여준다. 이런 관계 속에서 앨리스는 유일하게 새로운 사랑에 쉽게 빠지지 않는 인물이다. 그녀는 계산하지 않고 저돌적으로 다가가고, 또 거리낌 없이 울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질척대며, 질투와 분노도 앞뒤 재지 않고 표출한다. 무엇보다, 그녀는 처음부터 끝까지 댄을 진심으로 사랑했다.
편안하고 익숙한 것, 안정되고 안전한 것을 권태롭게 여기는, 앨리스를 제외한 세 사람은, 결국 모든 관계를 엉망으로 만들어 놓는다. 물론 래리와 안나는 결국 다시 함께 살게 되었지만, 어딘가 찝찝함은 남아있다. 자신의 진짜 이름을 숨겼던 앨리스는 결국 댄을 떠났으며, 그 둘의 이별은 전혀 아름답지 않았다.(아름다운 이별이 있을까 싶지만...)
이들의 파국은 우리에게 경고한다. 낯선 사람을 처음으로 만나고 가까워질 때의 그 설렘만이 '사랑'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낯선 사람에 대한 강한 호기심은 우리의 곁에 있는 소중한 사람들을 망각하게 만들 수 있으며, 그들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줄 수도 있다.
- 영화 가장 첫 장면부터 흘러나오는 데미안 라이스(Damien Rice)의 노래 "The Blower's Daughter"는 정말 명곡이다. 영화와 너무 잘 어울린다. 영화를 다 보고 나면, 데미안 라이스의 노래 위로, 서로가 서로에게 낯선 사람이었을 때의 앨리스와 댄의 모습(영화의 첫 장면)이 다시금 떠오른다.
- 현재의 연인과의 관계가 권태롭고 지겨워서, 이제는 평범한 대화나 데이트로는 만족하지 못한다면, 이 영화를 보길 바란다. 그리고 평범한 일들을 둘이 함께, 마음을 다해 해보길 바란다. 그저 그런 길을 걸으며 연인과 함께 나누는 소소한 대화에도 최선을 다하고, 자주 연인의 사진도 찍어주며, 가끔은 아무 이유 없이 상대를 온 마음을 다해 안아주기도 해 보라. 지금의 연인을 맨 처음 만났을 때의 마구 두근거리는 마음을 되찾기는 어려울 수도 있겠지만, 그때보다 더 큰 무언가가 가슴을 꽉 채우는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 댄은, 겉으로 보기에 어린애처럼 구는 앨리스를 너무 쉽게 봤다. 자신이 앨리스보다 어른이라고 생각했고, 앨리스를 속속들이 다 안다고 착각했다. 하지만 그는 그녀의 진짜 이름조차도 몰랐다. 아니, 그는 알고 싶어 하지도 않았다.
- 사랑은 운명인 것 같기도 하지만, 결국은 선택이다. 수많은 낯선 사람들 중에서, 내 옆에 두고 싶은 사람, 가까이 곁에 머물고 싶은 상대를 선택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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